출처-[뉴스메이커 2006-06-0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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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한 역에 정차하고 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기, 유라시아
배낭여행의 최고봉으로 각광
떨리는 가슴을 안고 이르쿠츠크 역 안으로 들어간다. 중국, 몽골을 거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다니.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갑자기 귀에는 ‘은하철도999’ 주제가가 흐르고 가슴은 콩닥거리기 시작한다.
기차 안에 올라타니 2등 칸은 2층 침대가 양쪽 벽에 붙어 있고 그럭저럭 혼자 짐 풀어놓고 며칠 생활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다만 아침에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다. 볼 일 보려는 사람과 세면하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 사람들은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나 친척들을 이런 기차여행에서 짬짬이 역에서 만나는 일을 즐기는 것 같다. 무성해진 수염도 깎고 몸치장도 해야 하니 기다리는 줄이 더욱 길어진다. 세수 한 번 하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한 손은 화장실 내부의 모서리를 잡는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물을 억지로 떠서 얼굴에다 비벼댄다. 이런 상황에서도 깔끔 떨며 굳이 머리를 감겠다면 다 마신 빈 생수통을 반으로 자른다. 그런 다음 졸졸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 급한 대로 일을 보는 것은 이곳만의 상식.
러시아인에 한국 컵라면은 필수품
횡단열차 안에서 만난 같은 방 러시아 사람들의 첫인상은 왠지 모르게 차갑다. 하지만 겁먹지 말고 일단은 먼저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건네니 그들도 웃음으로 답해준다. 그동안 웃는 표정이 마치 비웃는 것 같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아온지라 걱정했지만 러시아에서는 통했다!
열차여행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건데 밀폐된 공간에서 죽으나 사나 같이 지내야 하는 긴 여행 동안 서로 친구가 되느냐 ‘웬수’가 되느냐는 거의 첫인사에 달려 있다. 그러나 같이 고생한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유난을 떨지 않아도 승객들과는 어느 순간 저절로 친구가 되어버린다.
특히 친하게 지낼 좋은 기회는 식사 때. 어느 정도 얼굴을 익히면 선진국 국민들과는 달리 내것 네것 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같이 먹자고 식사를 권해준다. 러시아인의 경우 반주로 저녁마다 보드카를 곁들이기 때문에 이때 잽싸게 준비해간 소주팩을 꺼내 ‘코리안 원더풀 보드카~’ 어쩌고 하면서 한잔씩 돌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자기네들의 ‘한국인 친구’로 선포한다.
러시아인들은 단체로 몰려다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객실마다 끌고 돌아다니며 한국인 친구를 소개한다고 법석을 떤다. 다음 여행 때는 반드시 자기네 집에 꼭 놀러 와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열차여행 동안 러시아인들의 인기 준비물은 한국제 컵라면, 특히 ‘도시락 라면’인데 한 끼 식사보다는 간식 정도로 먹는다. 특히 라면국물을 상당히 좋아한다. 춥고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해장하기 딱 좋은 얼큰한 국물이 인기다.
대부분 준비해온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서 입으로 가져가는데 필자가 젓가락으로 후루룩 집어서 먹으면 모두 놀라워하며 이 신기한 모습을 구경시켜줘야 한다고 다른 방 친구를 불러오고 야단이다. 이때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젓가락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인기만점!
기차가 역을 빠져나오면 갑자기 시야가 확 넓어지며 숨통이 트이는 걸 느낀다. 눈앞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말 그대로 360도의 지평선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저녁노을이 퍼질 때는 하늘이 온통 오렌지색으로 변한다.
붉은 태양이 천천히 그리고 빨려 들어가듯이 지평선으로 가라앉는다. 밤 9시가 넘어도 아직 해가 지평선 위에 남아 있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시간의 개념조차도 이곳 대지 위에서는 사라져 버린다.
검색 엄격한 국경역 정체시간 길어
최근 들어 이 꿈의 열차여행은 유라시아를 관통하여 여행하려는 서양 여행자들 사이에서 배낭여행의 최고봉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열차 횡단 여행이라면 단연 시베리아 횡단을 떠올린다.
그러나 여행준비를 하다 보면 시베리아 횡단이 러시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웃 나라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러시아와 중국을 잇는 만주횡단열차, 그리고 러시아-몽골-중국을 잇는 몽골횡단열차다.
아침 8시쯤 베이징을 출발한 기차는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중국-몽골 간 국경 도시인 얼리안(Erlyan)에 도착했다. 이제야 땅을 좀 밟아보나 싶은데 주위가 요란하다.
그 유명한 바퀴 교체 작업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나라마다 레일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에 기차 바퀴 또한 교체해줘야 하는데 그냥 바퀴 떼고 바꾸고 하는 게 아니라 그 큰 열차 차량을 크레인으로 번쩍 들어올려 바퀴를 떼어내고 좀더 넓은 새 바퀴로 교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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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_기차가 몽골횡단철도를 달리고 있다. 아래_러시아 이르쿠츠크역 앞의 풍경. |
여기저기서 열차를 통째로 들어올려 바퀴를 교체한다는 좀처럼 보기 드문 구경을 놓칠세라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인다. 예전의 ‘살벌한 시절’에는 어림도 없었다지만 지금은 작업하는 곳 옆에서 방해만 하지 않으면 사진 찍고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상관없다.
몽골-러시아 간 국경 역 쉬크바타르(Sukhbaatar)는 심사와 검색이 아주 엄격하다. 밀입국을 막기 위해 기를 쓰고 뒤지는데 문 위, 천장 아래, 조그만 틈새, 좌석 아래까지 샅샅이 휘젓는다.
여권의 사진과 실물을 뚫어지게 몇 번씩 대조한다. 이렇게 수백 명 승객들을 조사하니 당연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서너 시간 동안 나가지도 못하고 기차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한다. 제일 고역인 것은 화장실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 국경에 도착할 때쯤 반드시 볼일을 봐놓아야 한다.
밀무역을 하는 국제 보따리장수들이 어디다 물건을 버리거나 숨길까봐 엄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몇몇 몽골인들과 러시아인들이 숨겨온 밀수품들이 적발되었다. 러시아 세관원들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왔다갔다 하더니 그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세관원이 사라지자마자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주섬주섬 숨겨놓은 보따리들을 꺼낸다. 가방더미, 통조림 박스, 옷 꾸러미 등등. 이들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많은 짐을 싣고 다니지만 도대체 어디다 숨기고 꺼내는지 용할 따름이다. 인터넷에서 엽기사진으로 떠도는 자기 몸의 100배 이상 되는 산만한 짐을 실은 자전거나 짐꾼들은 합성이 아니었다!
기차여행에서의 재미 중 하나가 나라마다 독특한 먹을거리들이다. 기차 식당칸도 국경만 넘어가면 메뉴가 바뀐다. 국제열차가 중국 땅을 달리면 식당칸은 다양한 면 요리를 포함한 중국 음식으로, 몽골 땅에서는 양고기와 쌀밥이 나오는 몽골식으로, 러시아 땅에서는 스프와 스테이크가 포함된 러시아 요리로 탈바꿈한다.
하나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를 출발해 한반도를 거쳐 중국, 몽골, 러시아, 유럽까지 대륙을 누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일단 중국이나 러시아로 건너가 열차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실크로드를 거쳐 고려의 상인들이 유럽과 중동에 도자기를 전파했듯이 다시 한 번 한반도가 동·서양의 문화를 잇는 철의 실크로드 출발점이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우리의 뜨거운 열정이 횡단 열차를 타고 세계로 퍼져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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