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실크로드 끝자락 터키 서남부

피나얀 2006. 7. 13. 00:33

 

출처-[경향신문 2006-07-12 11:30]

 

 

109개나 되는 기둥중 3개만 남은 아폴로 신전

옛날이야기 하나 하자. 때는 2,000여년 전. 장소는 지중해와 에게해를 끼고 있는 터키 서남부다. 바다를 건너 동방으로 향하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카이사르와 로마제국의 패권을 놓고 다퉜던 폼페이우스, 동화와 축제의 주인공이 돼버린 산타클로스의 실제인물 성 니콜라스…. 무너져버린 옛 도시에는 한때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렸던 영웅호걸과 성자들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터키 남부 안탈랴에서 미라와 디딤으로 이어지는 길. 거기서 그들을 만났다.

 

#안탈랴의 폼페이우스

 

안탈랴는 페르가몬 왕국이 BC 200년에 세운 도시. 지중해와 에게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안탈랴는 해상무역의 요충지였다. 로마나 아테네로 향하는 물자가 많이 오가다 보니 해적도 들끓었다. 해적들은 무역선은 물론 어선까지 닥치는 대로 납치, 선원들을 노예로 팔았다.

 

당시 안탈랴의 노예시장은 이 일대에서 가장 컸다. 선원들은 노예로 붙잡혀 다른 도시로 팔려가기도 했지만 가족에 의해 구출되는 경우도 많았다. 선원의 가족들은 노예시장에서 가족을 되사야 했던 것이다.

 

해적으로 인해 물자수송이 위험해지자 결국 로마가 칼을 들었다. 해적소탕 전쟁을 벌인 사람은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의 사위로 크라수스와 함께 삼두정치를 펼치며 실제로 로마를 통치했던 군인이다. 폼페이우스는 젊은 시절 안탈랴의 바다에서 해적을 소탕하면서 민심을 얻었다.

 

크라수스가 죽고 난 뒤 카이사르와의 경쟁에서 져 클레오파트라가 있는 이집트로 도망갔던 그는 이집트에서 살해당했다. 한때는 이집트의 왕권을 지켜주는 후견인이었지만 권력을 잃은 폼페이우스는 이집트에서 골칫거리에 불과했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쫓아 군대를 몰고 올 게 뻔한 상황. 결국 이집트의 관리들이 클레오파트라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그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마를 이끌었던 영웅의 비참한 최후였다. 안탈랴는 아름답다. 뒤에는 거대한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앞에는 푸른 지중해가 펼쳐진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이름난 관광지다. 현지인들 얘기로는 이스탄불보다 더 관광객이 많단다.

 

#미라의 산타클로스

 

산타클로스가 터키 사람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그의 이름은 성 니콜라스. 4세기 초 미라라는 소도시에서 선교를 하던 성직자였다. 안탈랴에서 144㎞ 정도 떨어진 미라는 고대 리키아 왕국의 주요 도시. AD 60년 사도 바울이 로마로 끌려갈 때 배를 탔다는 ‘무라’가 바로 미라다.

 

니콜라스는 부유한 곡물상인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썼다. 그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는 이렇다.

 

전설속의 메두사 상


가난한 집안의 딸이 결혼지참금이 없어 시집을 가기 힘들게 되자 그는 남몰래 그들을 돕기로 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서 남몰래 굴뚝으로 금덩어리를 던져주었다고 한다. 산타클로스가 굴뚝으로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나왔다. 그가 얼마나 선행을 많이 베풀었는지 시민들은 그를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까지 했다.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 그 역시 투옥됐으나 그를 두둔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큰 고초는 치르지 않았다. 니콜라스가 죽은 12월6일엔 성대한 축제가 열린다. 사후엔 성니클라우스 성당이 세워졌다. 성당은 4세기에 건축돼 6세기에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후대에 복원했다. 1087년 십자군들이 남하했을 때 석관을 부수고 유골을 이탈리아로 가져가 로마의 성당에 안장했다.

 

그때 가져가지 못한 유골은 안탈랴 박물관에 있다. 니콜라스 성당은 반쯤은 무너져내려 현재 보수공사 중이다. 인근에는 리키아 시대의 유적지도 있다. 바위벽에 동굴을 뚫고 만든 석굴 무덤과 원형극장이 보존돼 있다.

 

#디딤의 알렉산더

 

디딤은 그리스 델포이와 함께 가장 큰 아폴로 신전이 있던 곳이다. 월드컵 경기장만큼이나 큰 신전은 현재는 부서지고 무너져 내려 폐허나 다름없다. 그래도 어른 서너 명이 팔을 잡아야 안을 수 있는 하얀 대리석 기둥에서 당시 디딤의 신전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알 수 있다.

 

신전이 처음 세워진 것은 2,600~2,700년쯤 전이다. 당시엔 신전은 이처럼 크지 않았다. 지금의 규모가 된 것은 BC 7세기쯤이다. 그 후에도 파괴와 증축이 반복됐다.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BC 68년의 것이다.

 

BC 5세기 이땅의 주인은 이오이나인. 주민들은 신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으며 4년마다 한 번 열리는 신전 앞에 모여 성대한 축제를 열었다.

 

BC 496년 이오니아는 라데전투에서 페르시아에 패하자 디딤의 성직자들이 페르시아 정복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폴로 신상을 바쳤다. 태양의 신 아폴로는 그리스 문화권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겨진 신 중 하나. 당시 군주는 바로 이런 신전에서 신탁을 받아 전쟁도 치렀고, 나라도 다스렸다.

 

BC 330년 3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다리우스 대왕을 물리치고 세계정복의 깃발을 올렸던 알렉산더도 디딤에 도착, 신전부터 찾았다. 그러나 신전에서 아폴로상이 사라진 사연을 밀레투스인들로부터 듣고 대로했다. 알렉산더는 이오니아인들의 마을을 철저히 짓밟았다. 신상은 다시 세워졌으나 그 후 지진으로 신전은 많이 파괴됐다. 109개나 되는 기둥도 이제는 3개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 에게해와 지중해 연안의 고도를 훑다보면 수많은 유적과 역사 속의 주인공을 마주하게 된다. 이 일대는 히타이트, 프리지아, 우라티아, 리디아, 그리스, 로마 문명이 스쳐간 동서문명의 교집합지역이다. 터키에선 고대역사를 만질 수 있다.

 

산타클로스로 알려진 성 니콜라스 상


▶여행길잡이

 

서울∼이스탄불 직항편은 대한항공(1588-2001)이 화·금·일요일 오후 5시25분에 출발한다. 이스탄불까지는 11∼12시간 소요. 터키는 올해초 화폐개혁을 통해 터키 리라를 예테르(YTL)로 바꿨다. 1US달러에 1.25YTL 정도. 1유로는 1.45YTL. 우리 돈으로 850∼900원쯤 된다. 달러와 유로 모두 통한다. 안탈랴는 이스탄불에서 터키항공편으로 갈 수 있다. 국내선은 많다.

 

터키 디저트인 로쿰은 선물로도 좋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여왕이 ‘터키시 딜라이트’를 줄 테니 형제를 모두 데려오라고 유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터키시 딜라이트’가 로쿰이다. 이스탄불 스파이스 바자와 모스크 사잇길에 있는 알리 무히딘 하지 베키트란 가게(212-512066)는 228년 된 로쿰집이다. 그랑바자르는 4,500여개의 상점이 몰려 있는 유서깊은 시장이다.